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뉴스를 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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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지적 각성 있어야 자존감 높아져"

"칭찬, 인정? 정신차리고 가짜 자존감에서 나와야""자존감, 감정 아냐… 지성, 도덕성, 자기조절력 토대""직업도 멘토도 없다… 청년들 자존감 추락 당연""어려운 환경에도, 좋은 어른 만나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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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기사를 주욱 내려 읽다가 눈에 턱 하고 걸린 한 대목.  ​

<"인터넷에서 이런 댓글을 읽었어요. ‘요즘은 개나 소나 자존감 팔아먹네. 진짜 자존감은 벤츠에서 나온다!' 이게 전형적인 가짜 자존감입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벤츠를 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벤츠에 기대는 건 가짜예요. 자존감의 기준이 ‘타인’과 ‘환경’과 ‘과거’에 있다면 그건 가짜입니다.> ​

적어도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이라면 이런 혜민 스님들이나 할만한 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이 틀리다는 말은 아니다. 이분도 '열심히 살다 보면 벤츠를 탈 수도 있겠죠'라고 말한다. 뭐 짐작이지만 X도 없으면서 벤츠 무리해서 산 뒤 카푸어노릇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근데 저 댓글도 마음만 자존감있어봤자 소용없고 실질이 있어야 한다는 말 아닌가.  뭐 하여간 적어도 이 블로그에 오실 분들중 카푸어 수준은 없을거고, 나나 여기 오실 분들같은 그저 보통사람들에게 자존감 기준 어쩌고는 오히려 종종, 아니 거의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종종 조롱하고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작용한다. 다이어트를 예로 들어볼까, 살을 빼다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나도 모르게 온갖 핑계를 다 생각해내고, 인터넷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하지만 그 결과물로 남는건 무거운 몸무게와 두꺼운 뱃살뿐. 사람은 '수단방법 안 가리고'라고 이를 갈며 노력하려고 해도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게 된다. 의지 박약이라고 욕할 일이 아니다. 원래 사람은 그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벤츠에 기대든 뭘 어떻게 하든 앞을 봐야 한다. 앞을 향해 걸어야 한다는 말이고 실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내 손안에 쥐어진 돈이라곤 58세부터 받을 좀 센 금리의 연금에, 쥐꼬리만한 전세값에, 10년가까이 된 국산차 하나밖에 없던 시기가 있었다. 돈 안되는 짓거리에만 골몰해가며 그저 회사 일만 천직으로 알고 박박대며 15년 넘게 일하다 어느 순간 주위를 보니 같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과 자산 규모가 3배 넘게 벌어져 있었다. 연봉은 나름 많이 받던 사람이었는데 여기저기 새는것도 못막고, 딱히 더 버는것도 없다보니 당연했다. 가뜩이나 중년 초입이던 그때 걷잡을수 없이 우울증이 왔다. 수면패턴이 뒤집어지고 몸무게가 미친년 널뛰기하듯 춤을 추고 별별 증상이 다 폭풍처럼 찾아왔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이라는 결과물로 표현된 내 선택의 결과들, 그리고 그 결과를 만들어낸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존감이 뭉개졌던거다.. 그게 겨우 몇년 전 이야기다. X도 없는 그때 그 상황에서 맘가짐만 바로 한다고 자존감이 세워질거같나? 벤츠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맘만 먹으면 벤츠를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때 벤츠? 훗~ 하게 되는거고 그 능력이 내 노력과 선택의 결과물일때 진짜배기 자존감이 세워지는거다.  ​

다행히 난 그때 늦었지만 어떻게든 해 보려고 발버둥쳤고 다행히 운이 좋아 이젠 벤츠를  아무 부담없이 살만한 수준까지 왔다. 물론 지금 벤츠를 살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벤츠 살 돈 있으면 돈 더 보태서 상가를 사지 미쳤나고요 ㅎㅎㅎ. 지금은 오히려 지금 모는 차 제발 2~3년만 더 버텨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

결론은 그런거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자존감은 내 선택과 그 결과의 총합이었다. 평생 놀며 살진 않았지만 여태 집중했던 그런 일들이 내 자존감에 딱히 큰 도움을 주진 않았다.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내 자존감의 '필요'조건은 바로 돈이었다는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돈이 있다고 꼭 행복하진 않겠지, 하지만 돈이 없다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여러분. 돈도 없는 주제에 실물 벤츠 매일 닦아가며 살지 말고 언젠가는 벤츠를 되뇌이며 퇴근 후에 지도를 보고, 토요일마다 10년 넘게 타서 덜덜거리는 국산차를 타고 임장을 가라. 그 세월이, 노력이 쌓여 당신의 자존감이 될 것이다. 

마음 속에 벤츠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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